간호사의 삶은 늘 생과 사의 경계에서 존재합니다. 환자의 회복을 기원하며 헌신하는 동시에,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마주하며 깊은 슬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간호사로서 직접 겪은 죽음의 순간들과 그로 인한 감정, 그리고 다시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보았습니다. 의료인의 강인함 뒤에 숨겨진 감정의 무게를 나누며, 간호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죽음을 경험하는 간호사의 내면
간호사는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에서 일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가장 많이 목격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병동에 처음 배치되었을 때, 나는 간호사라는 이름 아래 전문성을 갖추고, 환자의 상태에 차분하게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마주한 순간, 그 어떤 교과서나 교육도 내 마음을 준비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처음 경험한 환자의 임종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중, 오래 입원해 계셨던 한 할아버지께서 서서히 호흡이 멎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동안 자주 눈을 마주치고,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던 분이었기에, 그 죽음은 단순한 '업무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심폐소생술이 무의미해진 순간, 의료진은 절차에 따라 움직였지만,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났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죽음은 예고되어 있었고, 어떤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감정은 무뎌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자의 얼굴, 마지막으로 했던 말, 보호자의 표정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간호사로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인간으로서의 감정은 계속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간호사에게 정서적 소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슬픔이 간호사로서의 책임감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환자에게 더 나은 마지막을 선물하고 싶다’, ‘남은 가족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를 다시 간호사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더욱 간호사가 되어갔습니다.
슬픔을 견디는 법,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슬픔은 간호사에게 있어 익숙하지만 결코 가벼운 감정이 아닙니다. 죽음을 경험한 후 찾아오는 감정의 파도는 예상보다 강하게 밀려옵니다. 어떤 날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떤 날은 사소한 말에도 눈물이 맺히곤 했습니다. 특히 보호자들이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열하거나, 의료진에게 분노를 표출할 때면 나 또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혼자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동료 간호사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교대 근무 후 짧은 시간이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때 많이 힘들었지?", "너 정말 잘했어" 같은 말이 오가며 우리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간호사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결국 우리는 사람이며, 공감과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달아 갔습니다. 또한 병원 내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심리상담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고, 무의식 중 억눌러두었던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간호사는 환자의 몸과 마음을 돌보지만, 때로는 스스로의 내면도 치유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감정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며 나는 다시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죽음을 맞이한 환자와 남겨진 가족들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나는 종종 환자의 손을 잡아드리고, 보호자에게 유언을 전달하거나,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로서의 역할은 생명을 치료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마지막 여정을 존엄하게 지켜주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간호사로 서기까지 – 회복과 헌신
죽음과 슬픔은 간호사의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감정을 꾹꾹 눌러두기만 한다면, 결국 어느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는 정서적 회복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회복은 단순한 감정의 회피가 아니라, 감정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찾는 과정입니다. 나는 환자의 죽음 앞에서 슬퍼했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 하나하나가 나를 더 단단한 간호사로 성장시켰습니다. 어떤 죽음은 나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었고, 어떤 슬픔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들었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의료 기술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애를 동반하고,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동행자’로서의 사명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회복의 과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나는 주말마다 산책을 하며 자연과 대화를 나누었고, 일기장을 통해 감정을 정리했습니다. 때때로 눈물도 흘렸지만, 그 모든 과정이 나를 다시 간호사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중요한 건,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였습니다. 이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그 순간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내가 전할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간호사로서 나의 존재는 환자의 생과 사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오늘도 묵묵히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