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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에서 병원까지, 한 간호사의 성장과 적응의 기록

by cooca78 2025. 5. 9.

혈압측정 실습

간호학과 재학 중 꿈꿔온 이상적인 간호사의 모습은 병원이라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지식으로는 충분할 것 같았던 나는 현장에서 수없이 흔들렸고, 실수하며 조금씩 성장해야 했다. 간호학과에서 배운 이론은 출발점에 불과했고,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그 위에 쌓이는 진짜 경험이었다. 이 글은 교실에서 병동까지 이어진 나의 간호 여정, 그리고 수많은 실전 속에서 적응하며 자리를 찾아간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이야기이다.

간호학과에서의 배움이 현실 앞에서 흔들릴 때

간호학과를 다니던 시절, 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지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외워야 할 질환과 약물, 치료과정은 끝이 없었고, 실습 평가를 통과하기 위한 긴장감은 일상이었다. 과제를 하며, 케이스를 정리하며, 나는 ‘이 정도면 나도 현장에서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졸업 후 첫 출근을 하던 날, 그 자신감은 병원 문을 들어서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습생으로 병원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기, 내가 진짜 책임져야 할 환자, 바로 대응해야 하는 업무는 간호학과에서 배운 내용을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해야 했다. 이론은 이론일 뿐, 그 자체로 현장을 버텨내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특히, 환자와 보호자 앞에 서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스스로 설명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상황은 큰 부담이었다. 간호학과 시절의 ‘정답’은 병동에서 늘 통하지 않았고,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내려야 할 때도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배움을 ‘완성’이 아니라 ‘시작’으로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병원은 성장의 교실이었다, 단지 교과서는 없었을 뿐

병원은 나에게 새로운 학교와 같았다. 하지만 여긴 교과서도 없고, 시험 범위도 없고, 가르쳐주는 교수도 없었다. 대신 현장에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환자 상태,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동료들, 그리고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책임감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의사의 지시를 받고, 보호자의 민원을 응대하고, 갑작스러운 상태 변화에 대응하며, 나는 조금씩 ‘진짜 간호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어제보다 실수를 줄이고, 조금 더 빠르게 환자에게 반응하고, 나 스스로를 믿는 과정 그 자체였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날 매일 시험에 들게 했다. 어떤 날은 환자의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어떤 날은 동료와의 오해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감정을 통제하는 법, 동시에 내 판단을 믿는 법을 배워갔다.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지만, 어느 날 선배가 “이젠 너 없이 근무하기 불안해”라고 말해준 순간, 나는 내가 이 공간에 조금은 자리 잡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식으로만 무장한 채 병원에 들어왔던 나는, 이제 경험이라는 진짜 교과서를 한 페이지씩 써 내려가고 있었다.

적응은 포기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기술이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단어 중 하나는 ‘적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를 한때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적응이라는 말은 마치 현실에 순응하고, 이상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적응이야말로 나를 지키는 가장 유연한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적응은 현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전략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내가 지친 날엔 한 발 물러나 숨을 고르는 것도, 새로운 후배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도, 모두 ‘적응’의 일부였다. 그렇게 나는 매일의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워나갔다. 간호학과에서 시작한 여정은 병원을 지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여정은 앞으로도 실수와 반성, 그리고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간호사는 단 하루 만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이 길이,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적응은 실패가 아니라 성숙의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